이방인·알베르 카뮈
바쁘면 이것만
1. 부조리
2. 실존주의
3. 죽음을 목격한 '이방인'
4. 죽음을 목전에 둔 '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 中
보통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까? 우리네 장례식장 분위기가 그렇듯, 울고불고 휘몰아치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사회적 통념이다. 하지만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첫 문장부터 감정과 행동의 절제를 보여주며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다.
알베르 카뮈는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방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카뮈의 작품을 읽는다면 미리 실존주의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보통 사물의 경우 만들어지기 전부터 어떤 목적을 가진다.
알베르 카뮈
하지만 인간은 사물과 달리 어떤 목적 없이 던져진, 스스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 허무를 느낄 수도 있는 반면,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자신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이렇듯 실존주의는 주체적인 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보통의 우리는 자유가 주어질 때 오히려 불안을 느끼며, 사회의 틀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춰 살기를 택한다. 카뮈는 그의 대표작인 이방인을 통해 이러한 삶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이를 더 깊이 이해해보자.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어쩌면 무료한 생활을 해 나가던 뫼르소는 모친의 부고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양로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오히려 업무에 지친 삶의 고단함과 피곤함을 느낄 뿐이다.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밀크커피를 맛있게 마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신을 보겠냐는 장의사의 제안을 거부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마침 주말이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해변에 나갔고, 이전부터 호감이 있던 동료 마리를 우연히 만나 데이트를 하며 영화를 본다.
사실 조금은 이상하다. 몇 년을 양로원에 모셨고, 평소 어머니와의 관계가 대화도 별로 없는 무덤덤한 사이이긴 했지만, 뫼르소는 장례식장에서조차 슬퍼하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한동안이라도 고인을 생각하며 유품을 정리하는 등 고인이 된 사람을 추억하는 최소한의 애도 기간이라는 것을 가질 것이다. 혹여나 고인과 애착이 없었다 한들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인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 아닌가.
그의 행동들은 보통의 우리가 아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어머니의 죽음뿐만이 아니다. 그는 평판이 좋지 않은 이웃 레몽의 접근을 거절하지 않는다. 레몽은 창고업자로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포주이다. 레몽이 자신의 집에 술을 마시러 오라고 제안하자 단지 저녁을 쉽게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승낙하고, 자신만 납득이 되면 그의 부적절한 요구까지 들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 사회에는 공식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감정과 규범이 존재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런 규범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와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어느 날 뫼르소는 레몽의 전연인과 관련된 아랍인들과 다툼에 엮이고, 우발적으로 그들을 살해한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쏘았고, 그 이유를 '태양 때문'이라고 말한다. 매일 같이 떠오르는 태양은 절대적인 사회의 규범에 대한 은유다.
이방인으로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뫼르소는 마찬가지로 햇볕또한 성가신 것으로 여긴다. 뫼르소는 태양에 비유된 사회적 규범과 틀에 박힌 위선이라는 감정을 향해 총을 쏘았던 것이다.
졸지에 살인자가 된 뫼르소, 그 시점부터 그의 평소 이방인 같은 행실들은 문제로 대두된다. 평소 자유롭게 살아왔던 모든 순간들이 악의적인 행동으로 비춰지게 된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불로 지지는 태양의 열기가 내 두 뺨으로 번졌고 땀방울들이 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날처럼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들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77p
그는 재판 과정에서도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면서 처음 보는 재판 과정에 재미를 느끼고, 어느 순간엔 피곤이 몰려와 귀찮다는 반응까지 보인다.
그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인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닌, 오롯이 자신이 느낀 감정만을 표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그는 판결의 순간에도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 당당함까지 보인다. 그에게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사는 부끄럽지 않은 ‘나’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확신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법은 개인의 솔직한 감정과 욕망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얼마나 사회적 요구에 맞춰 행동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결국 법 앞에서 그의 개성은 외면받고, 사형이 선고된다.
법은 개인의 감정과 욕망은 고려하지 않는다.
사건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결국 뫼르소의 진짜 죄는 아랍인을 죽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충분히 슬퍼하지 않고, 시신 앞에서 밀크 커피와 담배를 피운 것, 나쁜 친구를 사귄 것과 같은 평소의 행실 때문이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속에서 뭔가가 폭발해 버렸다. (·····) 나는 그의 사제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여 솟구쳐 오르는 가운데 나는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부었다. 그는 어지간이도 자신 만만한 태도군, 안 그래?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죄다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도 못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있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셈이지. 나를 보면 맨주먹 뿐인 것 같겠지. 그러나 내겐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 신부 이상의 확신이 있어. 나의 삶에 대한, 닥쳐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145p
어떤 사람들은 단지 평범해지기 위해 무한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Nobody realizes that some people expand tremendous energy merely to be normal.
알베르 카뮈
대부분의 사람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태어나기에 나에게 주어진 자유에 불안해하며 남들과 비슷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눈치를 보며 평범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말이다. 까뮈는 뫼르소의 사형선고를 통해 그런 삶에 경종을 울린다.
죽음은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어떤 것이 참다운 가치인지 가릴 수 있게 해주며,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삶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까뮈는 현재의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자유롭고 주체적인 나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테다.
사형이 선고된 뫼르소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죽음은 태양이 없는, 밤과 같은 개념이고, 뫼르소는 밤을 생각하며 갑자기 별을 보고, 흙냄새, 밤 냄새, 소금 냄새를 느끼며 희한한 평화를 만끽한다. 이 평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타인과 사회의 잣대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타인의 시선이 사라진 세상이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자유로운 순간이다.
목적없이 태어난 우리의 불안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불안함을 감수하며 주체적인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뫼르소는 우리 사회가 ‘이방인’이라 낙인 찍은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억지로 자신을 세상에 끼워맞추며 불안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주체적 삶의 평화를 찾고자 한다면, 진정한 나 자신과 삶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그가 나가고 나자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 눈을 뜨자 얼굴 위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 냄새, 소금 냄새가 내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신기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 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1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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