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 4.0ㆍ브렛 킹(지은이)ㆍ 장용원(옮긴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아니다.” 1994년, 빌게이츠가 한 말이다. 그리고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빅테크들의 진격으로 몰라보게 바뀌어버린 스마트 뱅킹 세상, 적응하기 바쁘지만 편한 것 또한 사실. 그런데 또 바뀐다고 한다. 종이지폐와 사람이 없어도 되는 세상으로.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은 모바일 및 디지털 결제로 바뀌고 있는 중이며, 2030년경이면 디지털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뱅크 4.0 / 127p
은행이 없어진다고?
현실이 되고 있는 빌게이츠의 예상
이미 많은 언론들과 책, 논문들이 지금 유지하고 있는 물리적 형태의 은행에 대해 변화가 불가피함을 이야기해 왔다. 빅테크들의 진격으로 머지않아 은행이 없어진다고들 이미 여기저기서 난리다. 이미 중국의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미국의 아마존과 구글, 애플 등이 자회사를 통해 기술, 물류, 고객 모니터링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의 여신*, 즉, 신용(크레딧)을 제공 중이다.
*여신 : 금융 업무를 하는 회사에서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
빅테크들이 제공한 비은행 여신 규모는 2013년 106억 달러에서 2019년에는 5,720억 달러로 성장했다. 이 책은 이런 환경 속에서 기존 은행들의 변화가 어려운 이유, 새로운 기술과 빅테크의 도전 등에 대해 설명한다.
무서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빅테크들의 금융 규모
뱅크(Bank)에서 뱅킹(Banking)으로
기존 은행들의 문제는 은행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중세에 만들어진 것에서 형태는 계속 바뀌었지만 그 근본 방식은 현재도 변하지 않았다.
온라인 업무 처리에서도 신청서가 필요한지 의문을 품는 대신, 지점에서 따르던 절차를 그대로 복제한 웹페이지를 구축했을 뿐이었다.
종이에 서명을 받는 프로세스와 물리적 법률 문서 기록을 통해 은행에서 부담하는 위험을 줄이는 프로세스에 집착하는 은행과 규제 기관 때문에, 온라인이나 휴대폰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는 나라가 아직도 많다.
28p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우린 구글홈에서 음성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아마존, 애플, 알리바바, 페이스북은 은행은 아니지만 새로운 뱅킹 세상을 열었다. 이들은 애초부터 은행 생태계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 ‘Bank’라는 물리적 시스템은 아니지만 ‘Banking’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면서.
필요가 없는 절차들이 과감히 생략되고,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고객의 행동에 따른 맥락적 개입을 통해 실시간으로 고객을 관리한다. 마지막에는 가상 세계와 만나는 것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빌게이츠의 말을 인용하며 출범한 토스뱅크
출처 - 토스뱅크 출범식(2021. 10.)
물리적 제약이 없는 뱅킹, 뱅크 4.0
이쯤에서 저자가 정의한 뱅크 4.0이 뭔지 얘기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 뱅크 1.0 : 주된 접근 포인트로서의 지점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전통적 뱅킹이 이루어지는 단계.
- 뱅크 2.0 : 은행 영업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접근이 가능한 셀프서비스 뱅킹의 등장. ATM 기기와 인터넷 뱅킹이 가속화되는 단계.
- 뱅크 3.0 :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뱅킹이 특징.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시작되어 모바일 결제, P2P 송금, 모바일 기반으로 가속화된다.
- 뱅크 4.0 : 기술 계층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내장형 유비쿼터스 뱅킹. 실시간, 맥락적 경험, 마찰 없는 참여, AI 기반의 스마트한 조언 등이 특징. 디지털 옴니채널로, 물리적 유통의 필요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뱅크 4.0 시대에 평범한 은행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 과학자, 머신러닝 전문가, 경험 디자이너, 스토리텔러, 행동심리학자 등 기존과는 다른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 구글홈, 시리, 알렉사 같은 음성 기반의 개인 AI 은행원이 등장하고, 로보 어드바이저, 분산원장 기술, 블록체인, 대안화폐 등은 계속 화두에 오를 것이다.
뱅킹의 단계적 진화
은행들의 찬란한 과거, 규제와 함께 족쇄가 되어 돌아오다
기존 은행들도 살아남기 위해 파괴적 혁신 시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물이 있다. 바로 기존의 경험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레거시(Legacy, 유산) 시스템이다. ‘레거시 Legacy’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Digital world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Legacy라 불리는 기존의 규칙과 시스템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뱅킹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재구축 한다는 것은 사회적 저항과 거대한 매몰비용을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2005년 케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은행계좌가 없었기 때문에 휴대폰 SIM카드를 통한 송금서비스인 엠페사(M-Pesa)가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사회주의 하에서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에 따른 요구로 처음 만들어진 온라인이 빈 공간이었기에 정부의 규제나 간섭이 없이 최적의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 수 있었고, 한 때 대한민국도 기존에 구리 케이블을 깐 적이 없었기 때문에 광케이블을 중심으로한 인터넷 강국이 되었다.
만약 당신이 “은행을 지금 새로 만든다면 기존의 뱅킹 프로세스와 시스템으로 만들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버려야 할 Legacy가 없는 빅테크가 기존 은행들보다 더 유리한 이유다.
인프라가 없던 것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규제기관들은 은행의 변화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금융 소비자와 시스템에 대한 위험을 적발하고 대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의 위험회피적이고 신중한 태도로 인해 규제가 현실과 맞지 않고 신기술의 부상으로 새로운 프로세스 설립이 가능하더라도 새로운 정책이 따라오려면 수년이 걸린다.
여기에 KYC(Know Your Customer 고객확인제도)나 금융소비자보호 의무도 계륵이다. KYC를 통한 Digital ID 문제는 비단 금융거래의 문제를 넘어 Digital Life의 신뢰성과 안정성에 핵심적인 요소다. 현재, 은행 창구에서 계좌를 개설하려면 신분증은 물론이고 계좌의 용도, 재직증명 등 많은 질문과 함께 최소 30분 이상 소요된다. 혹시 주식 펀드 계좌를 개설하고자 한다면 1시간 가량을 들여서 고객적합성 평가와 함께 또 수많은 서류에 사인하고 녹취, 녹화를 한다.
모두 금융실명제법과 금융소비자보호 차원에서 감독기관에서 정한 사항들이다. 반면, 비대면 채널에서는 KYC를 완료한 계좌에 달랑 10원 보내고 이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 규제의 비대칭적 적용의 한 사례로, 은행 창구 직원의 30분간의 노력을 10원짜리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이다. 우리가 점점 더 Digital Life에 예속될수록 Digital ID문제는 강력한 이슈가 될 것이다.
넘기 어려운 레거시와 규제기관의 벽
차가운 계산기만이 금융의 본질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책의 저자가 핀테크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고객 입장에서야 은행이 서비스를 하든, 네이버나 구글이 서비스하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결국은 뱅크가 아니라 뱅킹에 누가 더 도움이 되는가다.
하지만 금융의 본질이 모두 숫자와 디지털 신호로 바뀐다면 부의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질 위험이 있다. 신용 점수에 따른 차등이 차별로 이어지고 계급의 고착화를 가져올 위험도 있다.
디지털화하는 숫자 너머의 사람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정부가 가끔 은행들 ‘팔을 비틀어’ 신용이 부족하거나 팬데믹 상황에서 어려운 고객들에게 신용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도 뱅킹 4.0에서는 불가능하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핀테크 또는 디지털 은행들이 뭘 했다는 소식은 들어 본 적 없지만, 지역의 은행들은 소상공인 회생을 위해 금융지원을 많이 하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물론, 일부는 지자체의 강요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의 생존 근거 중 일부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저자의 주장이 큰 흐름에서 맞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기존 체계의 필요성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차가운 계산기만이 금융의 역할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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