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욱

[행동경제학 8편]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최고의 백신, 센티먼트

바쁘면 이것만


1. 무엇을 왜 연구했을까?

· 은행들은 재무비율을 인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부동산과 같은 고정자산과 규제자본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 센티먼트모형은 은행의 연간보고서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를 많이 사용할수록 재무적 곤경, 수익성 약화, 더 나아가 상장폐지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실증했다


2. 무엇을 발견했을까?

· 부정적 의미를 함축한 단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면 재무적 곤경에 처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투자자산 이윤과 주주 배당금은 축소됐다

· 센티먼트모형과 전통적 재무적 곤경 예측 모형(시가총액, 전년도 초과수익률) 간의 협업을 통해 재무적 곤경 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3. 무엇을 교훈으로 삼을까?

· 만병통치약 같은 경제학적 모형은 존재하지 않기에 조금씩 수정, 보완하며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 다양하고 다각적인 관점을 포용하고 실험하는 작은 움직임이야말로, 거대하고 값비싼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최고의 백신이다


시장 전망 자료를 조심하라. 시장을 미리 예상하고 돈을 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벤자민 그레이엄

기초, 기본, 핵심을 뜻하는 단어 '펀더멘탈Fundamentals'은 주식시장에서 회사의 매출액, 영억이익, 재무건전성, 미래성장성 등 기업이 가지고 있는 내재가치를 판단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각종 투자관련 조언들이 쏟아지는 요즘, 기업 투자의 근본이며 기본으로 제시되는 '재무제표 분석' 또한 펀더멘탈 평가의 일환이다.


펀더멘탈의 중요성은 인지하지만 결과는 예측불허


최근 장기화된 침체로 혼란스러운 주식시장을 두고, 각종 매체에서는 다양한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맞고틀릴 지는 섣불리 예측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현명한 투자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부정적 의미의 단어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


자본적정성(Capital Adequacy), 자산건전성(Asset Quality), 경영 능력(Management Quality), 수익성(Earnings), 유동성(Liquidity), 시장위험에 대한 민감도(Sensitivity to Market Risk) 등 5개 부문을 평가하는 은행 건전성 감독기준인 CAMELS를 비롯한 다양한 재무비율(Financial Ratios)은 은행의 재무적 곤경(Financial Distress)을 예측하는 대표적인 분석 도구다.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온 분석 틀이긴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취약점이 몇 가지 있다. 

 

은행들은 재무비율을 인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부동산과 같은 고정자산과 *규제자본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Window Dressing). 한때 미국의 최대 저축은행이었던 워싱턴뮤추얼(Washington Mutual)은 당시 자본적정성 기준을 만족했음에도 2008년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고, 미국 중앙은행이 스트레스 테스팅(Stress Testing)이라는 새로운 평가기준을 개발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은행은 공익성이 강한 사업을 하는 특성상 금융상품과 자본 운용 등과 관련해 정부의 각종 규제를 받는다. 규제자본은 보통 은행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자기자본을 일컫는다.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
출처 - https://marketbusinessnews.com/

 

또한 일본의 부동산 위기, 러시아 재정위기, 동아시아 경제위기 예측과 진단에 사용되었던 재무비율모형들은 다른 지역이나 다른 시점의 위기 상황에 적용되었을 때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 노트르담대의 간디 교수 연구진은 은행의 건전성과 경영실태를 평가하는 전통적 재무비율모형의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행동경제학적 *센티먼트모형(Sentiment Model)을 제시한다. *센티먼트는 펀더멘털의 대안으로 등장한 개념으로 어떤 상황, 사건, 의견 등에 대한 심리적 관점, 태도, 믿음을 뜻한다. 간단히,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감정적 투자 심리로 정의할 수 있다.

 

센티먼트모형은 은행의 연간보고서(Annual Report)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Negative Words; NW)를 많이 사용할수록 재무적 곤경, 수익성 약화, 더 나아가 상장폐지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센티먼트모형 분석
출처 - https://abinaya-j.medium.com/


연구진이 주목한 NW의 종류는 2,360여 개에 달하는데 손실(Loss), 보상 청구(Claim), 손상(Impairment), ~에 대비하여(Against), 불리한(Adverse), 수정된(Restated) 등이 가장 자주 등장했다.

 


센티멘트모형의 가능성이 보여주는 미래


연구진은 1997년부터 2014년도까지 뉴욕증권거래소, 미국증권거래소, 나스닥에 상장된 은행들의 연간보고서를 매년 분석하여 NW의 사용 비율(NW 수를 전체 단어 수로 나눈 값)이 이듬해의 상장폐지와 배당금 지급 여부, 신용손실충당금(Loan Loss Provision)의 증감과 ROA(Return on Assets, 자산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NW의 사용 비율은 1997년 평균 1.26%에서 2014년 평균 2.03%로 꾸준히 상승했다. NW의 사용 비율이 높은 은행일수록 상장폐지로 이어질 가능성과 회수가 불확실한 신용대출금의 비율은 높았고 배당금 지급 가능성과 ROA는 낮았다. 

 

NW 사용 비율이 0.38%p 증가할 때마다 상장폐지 확률은 58.06%p 상승했고 배당금 지급확률은 1.28%p 하락했다. 같은 조건에서 총대출금 대비 신용손실충당금 비율은 9.3%p 증가했고 ROA는 3.24%p 하락했다. 

 

즉, 부정적 의미를 함축한 단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질수록 재무적 곤경에 처할 가능성은 덩달아 치솟는 반면 투자자산이 창출하는 이윤과 주주에게 돌아갈 배당금은 축소되는 형국이다. 

부정적 언어의 사용이 부정적 결과를 불러왔다


NW 사용 비율과 은행의 재무적 곤경 간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실제 사례가 해밀턴은행(Hamilton Bankcorp)이다. 2000년도 4월에 공표된 해밀턴은행의 연간보고서를 보면, NW 사용 비율이 1.94%였다. 이는 당시 평균 NW 사용 비율 1.29%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임은 물론 해밀턴은행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였다. 

 

바로 다음 해인 2001년도에 해밀턴은행은 배당금 지급을 멈추었고 신용손실충당금 비율은 급상승했으며 실망스러운 ROA로 주주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 해밀턴은행은 2002년 1월에 나스닥 시장으로부터 퇴출당하였고 퇴출 직전 주가는 $1.65였다(2000년 4월의 주가는 $17.375). 

 

전통적 재무 성과 지표인 시가총액(주당 주식가격*주식 수)과 전년도 초과수익률의 재무적 곤경 예측 효과도 관찰됐다. 시가총액이 큰 은행일수록 배당금 지급 확률, 신용손실충당금, ROA는 높았고 상장폐지 가능성은 낮았다. 전년도 초과수익률도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은행의 전년도 수익률이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성과를 올리면 배당금 지급확률과 ROA는 동반 상승했고 신용손실충당금과 상장폐지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시가총액과 전년도 초과수익률의 재무적 곤경에 대한 예측력은 NW 사용 비율과 더불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2008년도 웰스파고은행(Wells Fargo)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고 재무적 곤경에 빠져 시가총액은 전년도의 반 토막에도 미치지 못했고 초과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웰스파고의 NW 사용 비율은 1.9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웰스파고의 평균 NW 사용 비율인 1.45%보다 약 32%p 높은 수치였다. 센티먼트모형과 전통적 재무적 곤경 예측 모형 간의 협업을 통해 재무적 곤경 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2022년 8월 결국 문을 닫은 웰스파고은행
출처 - www.currentaffairs.org


앞서 언급했듯이 재무비율모형의 단점 중 하나가 경영진이 재무비율을 인위적으로 개선하려는 강한 인센티브를 갖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문제가 센티먼트모형에도 발생할 수 있다. 즉, 부정적 뉴스를 숨기려는 인센티브로 인해 경영진이 비관적 용어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그 자리를 낙관적 견해로 채울 수 있다. 이럴 경우 센티먼트모형의 재무 건전성 예측력은 현저히 저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간디 교수 연구진은 이러한 인센티브가 실제 NW 사용 비율 감소와 낙관적 견해 증가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판단한다. 주된 이유가 피소위험(Litigation Risk)이다. 연간보고서에 낙관적 견해가 눈에 띄게 늘어났을 때 기업의 피소확률이 75.9%p 상승하고 피해자집단소송의 절대 다수가 중요 기업정보의 왜곡이나 누락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피소위험과 더불어 경영진이 정확한 기업정보와 경영 판단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 경험하는 평판(Reputation)의 훼손도 부정적 정보를 감추려는 인센티브를 제어하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성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닌

타이밍을 예측하라


만병통치약과 같은 경제학적 모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씩 수정하고 보완하며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금융기관의 재무적 건전성을 측정하고 신용위험을 예측하는 전통적 재무비율모형의 정확성과 예측력이 미흡하다는 우려는 여러 금융위기를 거치며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센티먼트모형은 기존 모형의 부족함을 보완할 잠재력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활용법도 간편하다. 

 

금융권 감독은 타이밍이 핵심이다. 타이밍이란 예측력이 우수한 요인은 더하고 형편없는 요인은 제거하는 과정을 시기적절하게 반복하는 것이다. 사격에서 0점 조정(Calibration)과 비슷하다. 연간보고서를 살펴볼 때 NW의 사용횟수를 세는 버릇으로 조정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번거롭지만 다양하고 다각적인 관점을 포용하고 실험하는 작은 움직임이 거대하고 값비싼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최고의 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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