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욱

[행동경제학 1편] 수익보다 손실이 더 슬픈 이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100만 원 투자해서 10만 원 수익을 얻었을 때보다 10만 원 손해봤을 때 기억이 더 오래남는다.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익절과 손절의 시점이 비슷해야 재산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정보의 풍요로움은 주의력 빈곤을 만들어낸다.

허버트 사이먼

어떤 투자자가 100만 원을 투자해서 10만 원의 수익을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수익을 낸 투자자의 심정은 어떨까? 10만 원만큼 부(富)가 증가한 사실에 기쁘고 흡족할 것이다.

만족과 불만족은 숫자처럼 절대적 크기가 같을까?


반대로 10만 원의 손실을 보았다면 어떨까? 10만 원만큼의 재산이 감소한 상황에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만족과 불만족의 절대적 크기가 같을까. 행동경제학이 발견한 투자자들의 행동은 사뭇 다르다.


10만 원 손실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10만 원 수익이 가져다주는 기쁨의 2배 이상이었다. 인간의 생각이 판단, 선택,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과 태도를 탐구하는 학문 분야가 행동경제학이다. 다시 말해서, 10만 원 손실이 주는 고통의 크기에 해당하는 수익의 기쁨을 얻으려면 2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



인간의 생각으로 인해 나타나는

행동과 태도를 탐구하는 행동경제학


이를 손실회피성향이라고 하는데, 주식의 상승장에서는 너무 빨리 팔아 상대적으로 적은 수익을 챙기고 하락장에서는 너무 오래 팔지 못하고 망설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큰 손실을 보는 현상인 처분효과를 낳는다.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익절과 손절의 시점이 비슷해야 재산을 늘릴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에 새기고 따라야 할 규범이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가 실제 상황에서 이런 규범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수익의 기쁨은 빨리 맛보고 싶고 손실의 고통은 너무 싫어 되도록 뒤로 미루려는 인간의 본성을 따른다.


처분효과는 규범에 맞지 않는 수천수만의 행동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규범과 행동의 차이로부터 행동경제학이 탄생했다.


손실의 고통을 미루다 큰 손실을 보는 일이 우리 주위에도 비일비재하다.


재무 의사결정을 포함한 각종 의사결정 과정은 인간의 ‘생각’에서 일어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카너먼 교수에 의하면 생각은 두 가지 시스템,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이루어져 있다.


시스템 1을 직관 또는 휴먼, 시스템 2를 이성 또는 이콘이라 한다. 두 시스템의 특징과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첫걸음이다. 다시 말해서, 투자자의 심리를 잘 이해해야 각종 금융시장의 생리도 파악하고 의사결정 시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크게 직관과 이성으로 나뉜다.


시스템 1은 또 다른 이름인 ‘직관’과 ‘휴먼’이 암시하듯 매우 직관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의 영역이다. 직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외부 자극과 정보에 자동적으로, 빠르게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대처한다.


시스템 1은 자발적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고 매우 적은 노력 혹은 노력 없이 작동한다. 휴리스틱이라고 알려진 어림짐작 기제, 편향, 그리고 감정에 의존해서 매우 인간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므로 균형감 잃은 선택을 하기 쉽다.


직관이라는 시스템은 즉각적으로 본능에 의해 자극에 반응한다.


반대로 시스템 2는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 판단과 결정을 주도한다. 시스템 2의 타고난 특성은 매우 수동적, 비활동적이고 느리고 게으르다. 태만한 시스템 2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의도적인 노력과 시간이 필수다.


따라서 사건이나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지 않거나 서둘러 사건이나 상황을 벗어나려 하면 시스템 2의 작동과 적극적 개입은 기대하기 어렵다. 해결해야 할 상황이나 문제가 어렵고 복잡하면 시스템 2가 개입한다.


이성이라는 시스템은 합리적이지만 수동적이며 느리고 게으르다.


그러나 시스템2가 개입을 한다고 항상 이콘이 의도한 선택, 행동, 또는 태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 2의 주의력과 집중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의력과 집중력을 잃으면 시스템 2의 합리적 분석 능력도 자연히 소멸한다.


시스템 2가 가진 노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가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다. 흰색 셔츠와 검은색 셔츠를 입은 두 개의 농구팀이 농구코트에서 동그란 원형으로 모여 뒤섞인 채, 같은 팀원에게 농구공을 패스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 상황을 보며 흰색 팀의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는 과제를 수행한다.


누구나 매우 단순하고 쉬운 과제로 여긴다. 과제를 수행하는 중에 팀원들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사이로 큰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가슴을 치며 10초 가까이 농구코트를 누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이 실험 영상을 보았는데, 그중 약 50%가 고릴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즉,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전혀 인식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 인간은 농구공의 개수를 세다보면 고릴라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멀티태스킹이 어려운 존재다.


거대한 고릴라가 춤을 추듯 주의를 끄는데도 말이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 멀티태스킹이 힘겹고 어려운 것은 시스템 2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시스템 2의 정확한 작동을 방해하는 건 노력의 한계만이 아니다. 시스템 1이 항상 자동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휴리스틱과 편향은 시스템 2의 이성적 판단과 선택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다.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보는 것이 전부.



휴리스틱을 예로 들어보자. 종이 위에 똑같은 길이의 평행선 두 개를 위아래로 그린다. 위의 선 양쪽 끝에 바깥쪽으로 향하는 화살 모양을 추가하고 아래 선 양쪽 끝에는 뾰족한 부분이 안쪽으로 향하는 화살 모양을 그려 넣으면 아래와 같은 도형이 완성된다.


어느 선이 긴가? 시작부터 두 선의 길이가 같다는 것을 인지적으로 확실히 알고 있는 시스템 2의 답은 “두 선의 길이는 같다”이다. 그러나 시스템 1의 확실한 답은 아래 선이다.


이러한 현상을 뮬러-라이어 착시라고 한다.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모두 휴리스틱의 영향을 받는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이런 유형의 오답이 시각 정보로 유입되면 시스템 1의 주장은 강해진다. 시스템 2가 공학용 자를 가지고 두 선의 길이를 직접 재서 같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오답을 정답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두 선의 길이는 같다.


투자 관련 유튜브를 찾다 보면 수익률 1,000%라는 표현을 선 그리듯이 선명히 보여주는 영상이 꽤 있다. 상식적으로 터무니없는 숫자이다. 재무관리 기초 지식만 있어도 바로 가짜라는 시스템 2의 판단이 있다.


그러나 이런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스스로 휴리스틱의 함정에 걸어 들어가는 꼴이 된다. 1,000% 수익을 맹목적으로 좇다 손실의 싱크홀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관이라는 경험의 함정, 휴리스틱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폭로 영상이나 글을 보며 많은 네티즌이 대상 연예인의 인격과 삶을 대수롭지 않게 난도질한다. 단 한 번도 만나 대화한 적도 없고 그들의 삶에 관한 기록을 분석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음모론자들이 가장 애용하고 의지하는 기술도 휴리스틱이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학생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힘의 근원 중 하나가 보이는 대로 믿어 버리는 휴리스틱이다.


이성적 시스템에 직관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가짜도 진짜로 둔갑하게 된다.


더불어 이렇게 형성된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골라서 보게 되면 회복 불능의 정신적 사망 상태에 이르게 된다. 기억하자. 시스템 2가 완벽한 생각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굼뜨고 게으른 천성과 더불어 시스템 2의 제대로 된 작동을 방해하는 휴리스틱이나 확증편향과 같은 시스템 1의 무의식적 방해 공작이다. 이러한 방해 공작에 이용될 수 있는 휴리스틱과 편향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시스템 1은 공공의 적과 같은 존재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생각이 시스템 2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간의 생존 가능성은 제로다. 시스템 1은 주변 환경의 위협에 오랜 기간 대처하고 적응하며 생각이 발전시켜 온 소중한 자산이다. 시스템 1이 없다면 집에서 직장까지 운전하는 데 한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직관이 없다면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


아니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자전거나 사람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길을 걷다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넘어지고 부딪힐 것이다. 목적지까지 살아서 도달하면 다행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도 없다. 음악 감상이나 요가를 하며 무아지경에 이르지도 못한다. 귀에 이어폰 꽂고 조깅이나 사이클링을 하는 호사도 누릴 수 없다. 밥은 제때 먹을 수 있을까, 아니 숨은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무리 없이 수행하던 모든 것이 멈추게 된다.


시스템 1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훈련, 개선, 진화의 대상이자 생존의 보루이다. 시스템 2와 더불어 인간을 인간답게, 위대하게, 경이롭게 만드는 우리의 소중한 일부이다.


직관과 이성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 잊지 말자.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조화롭게 균형 잡힌 협업을 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고릴라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거나 정신적 사망 상태에 이르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을. 경험과 기억이 자아를 만든다. 따라서 멋진 경험, 멋진 기억을 쌓으면 멋진 자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행동경제학.


생각이 판단과 선택에 미치는 영향과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바로 멋진 경험과 기억을 쌓는 초석이요 반석이다.

써먹을 포인트


  • 손실회피성향 - 확실한 손실을 피하고 싶어 하는 심리.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인간은 불확실한 이익보다는 확실한 손해를 더 크게 체험한다. 얻는 기쁨보다 잃는 슬픔이 두 배 정도 더 크다.
  • 생각은 두 가지 시스템,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이루어져 있다. 시스템 1을 직관 또는 휴먼, 시스템 2를 이성 또는 이콘이라 한다. 두 시스템의 특징과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첫걸음이다.
  • 시스템 1의 특징 - 자동적이고 본능적인 반응, 자발적 통제 불가능, 휴리스틱이라고 알려진 어림짐작 기제, 편향, 감정에 의존해 인간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균형감 잃은 선택을 하기 쉽다.
  • 시스템 2의 특징 - 수동적이고 비활동적 반응,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 판단과 결정을 주도하지만 의도적인 노력과 시간 없이는 개입을 기대하기 힘들다. 해결해야 할 상황이나 문제가 어렵고 복잡한 경우 개입하는 편이다.
  • 시스템 1이 항상 자동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휴리스틱과 편향은 시스템 2의 이성적 판단과 선택을 가로막는다.
  •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모두 휴리스틱의 영향을 받는다. 음모론자들이 가장 애용하고 의지하는 기술도 휴리스틱이다.
  • 직관적이고, 편향된 시스템 1의 작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인간이 주변 환경의 위협에 오랜 기간 대처하고 적응하며 발전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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