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욱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인간은 과부하로 오작동을 일으키지만, AI에겐 문제되지 않는다. AI에게 과부하는 오히려 전문분야다. AI는 4차산업혁명시대의 주역으로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혼란과 공포로 변신시키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별로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
자동차가 스스로 목적지에 도착하고 로봇이 환자를 치료하고 AI 변호사가 법정에서 피고를 변호한다. 금융 상담과 투자 분석도 더 이상 자산 운용 전문가나 재무분석가의 고유영역이 아니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단면이다.
AI의 발전이 행동경제학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행동경제학이 경제와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면 4차 혁명의 시대에서는 AI가 패러다임의 변혁을 주도하고 있다. 인간이 내리는 의사결정과 행동 역학에 근본적인 변화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과 행동을 다루는 행동경제학도 그에 걸맞은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콜린 캐머러 교수에 따르면 AI 경제학의 도래는 필연적이며 행동경제학은 AI와 협업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AI를 적절히 활용하면 행동경제학이 지닌 단점과 한계점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예측 오류와 그 원인, 실용적 개선책을 찾는 데 있어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다. AI 발전은 위기이기보다는 행동경제학이 진보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다.
행동경제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인지적, 감정적, 환경적, 유전적 한계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의사결정 과정 및 행태와 접목시킨다. 심리학, 뇌/신경과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생물학, 유전학 등 타 학문과의 협업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인간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다차원적으로 바라보고 비경제적 요인들의 잠재적 영향까지 고려하는 행동경제학의 열린 노력은 AI가 머신러닝이라는 학습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AI의 머신러닝은 그 범위나 대상 그리고 분석 능력 면에서 행동경제학의 열린 마음보다 훨씬 넓고 크고 높다. 행동경제학이 가진 여러 한계점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전통경제학은 가격, 수량, 자본 등 소수의 경제적 요인을 사용한 간결한 모형으로 각종 경제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행동경제학은 전통경제학적 요인에 다양한 편향과 휴리스틱 요인을 추가해 경제학적 모형의 예측력을 높였다. 이제 AI의 등장으로 보다 정확하고 신뢰성이 높은 경제모형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머신러닝과 딥러닝은 연구소 실험, 현장 실험, 온라인 참여 실험, 각종 데이터를 이용한 실증 연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정보 처리 속도는 측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빠르다.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원인들의 상호작용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문제를 설명하는 요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AI 활용
반면에 경제적 모형은 경제문제를 핵심 요소 위주로 분석하고 예측하려는 간결성의 원칙에 충실하다. 이 원칙은 전통경제학이든 행동경제학이든 별반 차이가 없다. 따라서 경제적 모형은 역설적으로 경제적 문제를 설명할 때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해결하는 데는 그리 도움이 안 된다. 이러한 오래된 연장이 아직도 경제문제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데는 인간이 지닌 인지적 한계가 큰 몫을 한다.
인간은 자기 과신으로 인해 어떤 문제를 설명하는 요인들을 잘 추려내지 못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시 쓸모없는 요인들을 무분별하게 포함하거나 필수적인 요인들을 빠뜨리는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물론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하지만 충분치 않다.
행동경제학의 주체는 인간이고 개선하고자 하는 경제모형도 여전히 전통경제학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AI 진보는 기존 경제모형의 한계와 오래된 프레임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과부하 상황에서 인간과 AI의 차이가 나타난다.
AI는 문제해결에 도움 되는 행동경제학적 요인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요인들 간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파악해 보다 완전한 경제모형을 창조해낸다. 이럴 경우 전통적 경제모형과 인간은 ‘과부하’로 오작동을 일으키지만 AI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AI에게 ‘과부하’는 오히려 전문 분야다.
AI에게 과부하는 전문분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전통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은 과거나 지금이나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과 인간은 제한적 해결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AI는 한계를 극복하는 효율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AI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중국은 순식간에 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는 안면인식 기술을 교통, 소비, 금융 분야로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넷플릭스는 AI를 활용해 회원들의 영화감상 기록을 분석해 영화를 추천하여 추가 수요를 유발한다. AI 투자 알고리즘을 갖추지 않은 금융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IBM이 만든 ‘닥터 왓슨’은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진단, 유전 정보 분석, 임상시험을 수행한다.
메타버스 환경에서 대학 강의와 비즈니스 컨퍼런스가 열린다. 로봇 병사,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정찰기도 이미 전선을 누비고 있다. AI가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빅데이터로 소비자 선호도를 파악한 후 같은 제품을 어떤 소비자에겐 비싸게, 어떤 소비자에겐 저렴하게 판매하는 가격 차별 등의 비윤리적 행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정보의 선택적 주입을 통해 소비심리를 조작하는 행위도 가능하다.
연예인 사생활 폭로나 미투운동의 2차 피해 등에 AI가 악용되었다면 사태가 훨씬 악화되었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페이스북 내부고발자 청문회에서 폭로된 내용은 충격적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빅데이터 알고리즘이 10대 청소년의 정신 건강과 자살 충동에 미치는 영향을 방관하고 음모론, 선정성을 조장하고, 마약 카르텔, 인신매매 집단, 폭력 집단의 사업 및 선동 매개체로 쓰이는 폐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두 소셜미디어의 전 세계 이용자가 약 40억 명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부작용의 사회적, 심리적 비용은 상상조차 어렵다. AI는 잘 쓰면 명약이고 잘못 쓰면 맹독이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도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세상에 AI는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희망이 될 것인가, 불확실성을 혼란과 공포로 변신시키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인가.
아마 시간만이 그 답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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