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욱
바쁘면 이것만
1. 성별 언어가 직무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두 가지 핵심 동기로, '자기중심적 특성'과 '공동체적 특성'이 있다
· 여성은 공동체적 목표를 달성하는 일을 선호한다.
· 남성은 자기중심적 목표와 일치하는 일을 선호한다.
2. 자기중심적 언어가 직무의 매력도를 낮춘다
· 연구 결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기업일수록 공동체적 언어와 자기중심적 언어를 골고루 사용했다.
· 다양성 문화는 성별 언어 차이로 인한 채용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 자기중심적 언어 사용 비율이 높은 채용 공고에는, 남성 또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3. 언어 편향이 적은 곳에 유능한 인재들이 모인다
· 다양성 문화는 공동체적 언어 사용을 촉진하여, 성별 언어로 인한 차별을 예방한다.
· 자기중심적, 공동체적 언어를 균형 있게 조합하면 성별에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할 수 있다.
· AI채용은 사회적 편향을 심화할 수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성별 언어가 직무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미국 공인 재무분석가(CFA, Chartered Financial Analyst) 중 여성은 20% 미만이다. 개방형 뮤추얼 펀드를 운용하는 여성 펀드 매니저의 비중은 약 9.4%이고, 이들이 관리하는 자산은 업계 전체의 약 2%에 불과하다.
과도한 남성중심주의 문화, 성별 고정 관념, 롤모델의 부족, 산업 전반의 열악한 워라밸(Work-Life Balance)에 대한 인식 등이 여성이 금융 산업에서 외면받아 온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업계의 많은 회사가 유연한 근무 시간과 심리 상담, 여성 및 기타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채용 등 포용 및 다양성 이니셔티브를 통해 성별 불균형에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위, 성취, 독립 등을 중요시하는 자기중심적(Agentic) 특성과 조화, 보살핌, 나눔 등을 중요시하는 공동체적(Communal) 특성은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두 가지 핵심 동기다. 또한 사람들이 직장을 비롯한 다양한 환경을 어떻게 평가하고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렌즈 역할을 한다.
출처 - 픽사베이
조직행동학적 관점에 따르면 여성은 공동체적 목표를 달성하는 일(예: 다른 사람 돕기, 사람들과 협력하기)을 선호하는 반면 남성은 자기중심적 목표와 일치하는 일(예: 경쟁, 개별 업무)을 선호한다. 두 특성은 서로 상충하는 측면이 있지만, 서로에 관한 이해를 돕는 상호보완적 측면도 갖고 있다.
즉, 개인이 접하는 삶의 다양한 상황과 환경이 두 가지 특성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중심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공동체적 특성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뉴파운드랜드메모리얼대의 연구팀은 자기중심적 특성과 공동체적 특성을 대표하는 성별 언어(Gendered Language), 기업의 다양성 존중 문화, 그리고 직무에 대한 인식 간 복잡한 역학관계를 밝히기 위해 2단계로 이뤄진 연구를 진행했다.
1단계 연구는 기업들을 채용 다양성 수준에 따라 분류하여 인턴십 채용 공고(온라인 채용 공고 및 기업 홈페이지 채용 공고) 시 성별 언어를 사용하는 정도를 비교·분석했다. 2단계 연구는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턴십 채용 공고에 나타난 성별 언어의 특성(자기중심적 vs. 공동체적)이 지원자의 직무 적합도, 직무 매력도, 직무 관심도 등 직무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자기중심적 언어가 직무의 매력도를 낮춘다
1단계 연구에서는 인턴십 채용 공고문에 사용된 언어 중 특정 단어의 유무를 평가할 수 있는 컴퓨터화된 문장(텍스트) 분석 도구인 LIWC(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를 활용했다.
‘극복한다’ ‘확신하는’ 등의 자기중심적 동사나 형용사, ‘도움을 주다’ ‘충성스러운’ 등의 공동체적 동사나 형용사를 사용하는 빈도를 총 사용 단어의 수로 나누어 두 가지 성별 언어(자기중심적 언어와 공동체적 언어)의 사용 비율을 측정했다. 자기중심적 언어의 사용 비율이 0.05이면 채용 공고에 사용된 총 단어 수 중 자기중심적 단어의 수가 5%라는 뜻이다.
1단계 연구의 표본은 총 90개의 기업으로 구성됐다. 연구팀은 이들 기업을 3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째 그룹은 최고 수준의 다양성 문화로 명성이 높은 30개 금융 기업(다양성 금융 그룹), 둘째 그룹은 다양성을 기업 문화의 특성으로 내세울 수 없는 30개 금융 기업(일반 금융 그룹), 셋째 그룹은 최고 수준의 다양성을 자랑하는 30개 비금융기업(다양성 비금융 그룹)을 포함했다.
세 그룹이 내건 총 136개의 인턴십 채용 공고를 비교·분석한 결과, 다양성 금융 그룹과 일반 금융 그룹의 자기중심적 언어 사용 비율은 각각 6.17%와 5.80%로 통제그룹인 다양성 비금융 그룹의 사용 비율인 5.29%보다 약 17%p, 10%p 높았다.
출처 - 픽사베이
반면에 일반 금융 그룹의 공동체적 언어의 사용 비율(5.68%)은 다양성 비금융 그룹(5.89%)보다 낮았다. 자기중심적 언어의 사용이 금융 기업의 채용 공고에 만연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이는 금융 산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여성 지원자가 마주해야 할 현실적 어려움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자기중심적 언어와 공동체적 언어의 사용을 동시에 촉진하는 효과(다양성 효과)도 관찰됐다. 다양성 금융 그룹은 일반 금융 그룹에 비해 채용 공고에 공동체적 언어와 자기중심적 언어 모두 약 20%p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금융, 비금융을 막론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기업은 공동체적 언어의 사용 빈도가 자기중심적 언어의 사용 빈도보다 약 10%p 높았다. 반대로 일반 금융 기업의 공동체적 언어 사용 빈도는 자기중심적 언어 사용 빈도보다 약 2%p가 낮았다.
이는 기업의 다양성 문화가 인간 행동을 자극하는 두 개의 핵심 동기인 공동체적, 자기중심적 특성을 동시에 활성화함은 물론, 성별 언어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채용의 부작용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암시하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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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연구는 프로리픽아카데믹(Prolific academic) 플랫폼에서 고용한 416명(여성, 남성 각각 50%)의 경영학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출발점이다. 설문조사 내용은 두 개의 금융 기업 인턴십 채용 공고로 구성됐다.
첫 번째 공고는 자기중심적 언어 사용 빈도가 높은 조건(총 사용 단어의 약 11%가 자기중심적 언어)과 낮은 조건(총 사용 단어의 약 3%가 자기중심적 언어)으로 나뉘었다. 두 번째 공고는 공동체적 언어 사용 빈도가 높은 조건(약 10%가 공동체적 언어)과 낮은 조건(약 3%가 공동체적 언어)을 제시했다. 이 밖의 다른 기업 특징(기업 로고, 다양성 기술, 직무 훈련 및 학습 기회, 직무 조건 등)은 모든 조건에서 똑같도록 설계됐다.
지원자의 직무에 대한 인식은 채용 공고가 지원자의 세 가지 목표(직무 적합도, 직무 매력도, 직무 관심도)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로 측정했다. 직무 적합도는 “공고에 기술된 인턴십 업무가 당신에게 얼마나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1~5 사이의 리커트 척도(1=완전 부적합, 5=매우 적합)로 답했다.
직무 매력도는 “인턴십 업무가 충분히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에 역시 1~5 사이의 척도(1=강한 부정, 5=강한 긍정)로 응답했다. 비슷하게 직무 관심도는 공고에 기술된 직무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1~7의 척도(1=전혀 없음, 7=최대 관심)로 표시했다.
2단계 연구 결과, 여성 참가자는 인턴십 채용 공고가 공동체적 언어 사용 빈도가 높고 자기중심적 언어 사용 빈도가 낮을 때 남성 참가자보다 약 1.5배 높은 직무 적합도와 직무 관심도를 보였다. 하지만 성별 언어의 상대적 사용 빈도가 직무 매력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이는 인턴십 채용 공고에서 지나친 자기중심적 언어의 사용이 금융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려는 여성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고 성별 다양성이 금융 산업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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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흥미로운 결과는 남성 참가자는 인턴십 채용 공고가 자기중심적 언어와 공동체적 언어 사용 빈도가 모두 낮을 때 여성 참가자와 비교해 약 2배에 가까운 직무 적합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 경우 남성의 직무 관심도도 여성의 약 1.5배에 달했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채용 공고에 성별 언어로 인식되는 단어의 수가 적을 때 직무와 지원 목표 간 더 높은 일치감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예상대로 자기중심적 언어의 사용 빈도가 높을 때는 공동체적 언어 사용 빈도의 고저와 상관없이 남성의 직무 적합도와 직무 관심도가 여성을 앞섰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남성의 직무 적합도와 만족도는 자기중심적 언어의 사용 비율이 낮을 때가 높을 때보다 더 높았다. 자기중심적 언어의 빈번한 사용이 남성의 직무에 대한 적합도와 관심도를 높일 것이라는 기존의 믿음과 상반되는, 눈여겨봐야 할 결과다.
언어 편향이 적은 곳에 유능한 인재들이 모인다
성별 다양성은 도덕적, 윤리적 이슈일 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혁신의 자양분이다. 더 나아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의사결정에 이르게 하는 실용적 접근법이다.
다양성의 장점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림으로써 발생하는 불편, 불신, 후회, 갈등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에 충분하다. 다양성이 공동체적 언어의 사용을 촉진해 성별 언어로 인한 은밀한 차별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는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금융 인턴십 채용 공고의 2단계 연구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성별 언어는 구직자의 직무 적합도와 직무 관심도에 영향을 미쳐 여성의 사회 진출을 방해하는 언어 편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채용 시장에서 유능한 여성 인재의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기업은 자기중심적, 공동체적 언어를 적절히, 균형 있게 조합한 채용 방식이 성별에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윈윈전략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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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AI를 이용한 채용이 늘고 있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AI가 사회적 편향을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왜곡하는 편향을 제거하기 위한 디바이어싱(Debiasing) 알고리즘이 때론 체계적인 성별 편향(Gender Biases)을 심화할 수 있다.
따라서 AI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선 성별 편향도 통합해서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며 창의적인 광고와 마케팅으로 매출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능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다. 다양성과 성별 언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언어 사용의 작은 차이가 커다란 결과의 차이를 낳곤 한다. 노동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채용 공고에 성별 언어를 신중하고 균형 있게 사용하는 기업은 그만큼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양성 문화가 더해지면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