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번 프라이이스(지은이), 이현(옮긴이)

게으른 당신, 누워있어도 괜찮은 이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미라클 모닝'은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며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에 부응해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을 잔뜩 맞췄다가 오히려 더 피곤해지기 일쑤인 우리에게 그냥 편하게 게으를 것을 권유하는 책 <게으르다는 착각>. 우리가 스스로 게으르다는 생각하며 죄책감을 가져서도, 자책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강조합니다.


Today I don't feel like doing anything
오늘은 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I just wanna lay in my bed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래

Don't feel like picking up my phone
전화 받을 기분도 아냐

So leave a message at the tone
그러니까 삐 소리 나면 메세지 남겨라

'Cause today I swear I'm not doing anything
왜냐면 난 오늘 결단코 아무것도 안 할 거니까

Bruno mars / The Lazy Song

하루 한편 글쓰기, 두 시간씩 운동하기, 10kg 감량하기, 유튜브에 영상 업로드하기, 자격증 공부하기, 1년에 책 20권 읽기... 

 

새해가 되면, 또는 큰 좌절를 맛 본 이후 우리는 꼭 나를 바꿔보겠다며 다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단단히 먹은 마음은 하루 이틀 지나면 말랑말랑해지고, 빽빽하게 세웠던 계획도 하나둘 미루게 되죠. 

 

지키지 못한 약속과 타인의 성공을 보며, 스스로 의지박약이라 탓하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그런 당신에게 사회는 말합니다. 

 

“넌 똑똑하지 않고, 날씬하지 않아.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성공할 수도 없어. 이 모든 건 네가 게을러서야!”


사회의 통념에 맞추기를 강요받는 당신


이는, 사회가 개인의 ‘가치’를 ‘쓸모'와 연관시키기 때문인데요. 열심히 일하고 생산적인 인간이 가치 있다는 신념 체계가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 말이 정말 사실일까요?

 

미국의 정보기기 제조업체인 IBM에 의하면, 현시대는 매일 250경 바이트의 데이터가 추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90%는 지난 2년 사이에 추가된 것이며 개인에게 노출되는 정보의 양은 1986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정보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정보를 놓치고 사는 건 왠지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정보 중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인간의 주의력과 의지엔 한계가 있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건, 무리일뿐더러 효율도 떨어집니다. 그러나 사회는 계속해서,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해 전문가가 되라고 부추깁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은근하게 타인과의 비교 및 경쟁을 조장하고, 더 열심히 일하라 말하고, 게으름을 나약함으로 치부하죠. 개인의 여유와 행복을 담보로, 사회는 경제 성장과 부의 축적을 이뤄갑니다. 여기서 핵심은 ‘더 열심히’입니다. 



'좋아요'를 받아야만 '좋은 삶'일까


많은 현대인이 이미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하다 결국 번아웃을 경험하게 되죠. 몸과 마음이 지친 번아웃 상태에선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요. 

 

번아웃의 다른 말인 무기력, 게으름 역시 몸과 마음을 원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현상입니다. ‘게으름'은 나약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게으름을 단죄할 대상으로 여기며,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사회는 왜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까요? 그 인식을 구축해온 신념 체계를 알아보고, 자기 착취를 멈추기 위해 게으름이 발현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자기 착취의 시대


의지를 넘어서는 거대한 힘이 몸을 짓누른 바람에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한 밤이면, 죄책감에 휩싸여 자신을 책망합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면, 이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게으름은 선천적이거나, 환경에 의해 생겨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게으름을 퇴치해야 할 개인의 악(惡)으로 치부하죠. 이는 이데올로기, 문화, 개개인에 뿌리내린 거짓된 교리 때문입니다. 


▪ 첫째, 당신의 가치가 곧 당신의 생산성이다.

▪ 둘째,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신뢰할 수 없다.

▪ 셋째, 항상 더 해낼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이 거짓 교리가 생긴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본주의의 시작점이 보입니다. 바로 17세기 제국주의인데요. 당시, 미국 농업은 전적으로 노예 노동에 의존하는 구조였습니다. 

 

노예들의 생산성이 돈이었으니, 미국 부유층에게 노예가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죠. 그런 노예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든 것은 바로 종교적 가르침이었습니다. 현재의 고통은 사후세계의 번영을 약속하는 일이었죠. 


출처 - 『A large cotton field』, Morris, Charles, 1833-1922


‘근면’, ‘성실'의 정신을 가진 기독교는 부지런하게 일하는 자만이 ‘천국행 티켓’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교화했습니다. 

 

그리고 18세기, 자본주의의 태동을 알린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일곱 살 아이도 하루에 16시간씩 공장에서 일했던 시기, 노동자들에겐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게으름은 사회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많은 사람의 무의식에 공고히 자리하게 되었죠.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늘날 영화, 유튜브, TV 등 다양한 대중매체에서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근면, 성실을 강조하고, 자수성가한 사람이 나와 ‘깨어나라’고 외칩니다. 부와 명예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회를 잡으라 말하고, 서점에는 생산성 있는 삶을 살라는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란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답’, ‘하나의 길’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성적, 상위권 대학이라는 하나의 길만 바라보고 있죠. 산업혁명 때 만들어진 교육 제도는 정해진 틀, 반복되는 루틴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교육 제도를 정형화한 후 그 안에 학생들을 밀어 넣고 획일화시키는 것이죠.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고분고분함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교육 제도 안에서 공부하고, 근면 성실을 외치는 미디어에 노출된 현대인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개미’, ‘회사의 노예’라 칭하며, 자조적인 농담을 하는 직장인이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경력이 망가질까 걱정하며, 맘 편히 일을 쉬지도 못하죠.

 

*‘긱 경제'로 대변되는 불확실의 시대가 다가올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SNS 속 잘 나가는 타인을 볼 때면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죠. *긱 경제(Gig Economy) : 필요에 따라 기업들이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의 경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일하는 시대


열심히 살지 않아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한 이유가 내가 게을러서인 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던 산업혁명 시기에 비하면 노동 환경이 나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조가 생기며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죠. 문제는 이러한 시기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014년 갤럽이 실시한 미국인의 주당 평균 업무 시간은 47시간이었으며, 2018년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가 주당 45시간 일하고 그중 12%는 주당 6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업무 환경은 생산적으로 변했지만 이러한 환경이 노동 시간을 줄여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이메일, 슬랙 등 디지털 업무 도구가 고도화되면서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게 된 요즘의 환경만 봐도 알 수 있죠.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우리의 여가를 빼앗아갈 뿐 아니라, 우리의 뇌도 야금야금 갉아먹습니다. 

 

1980년대 중반, 사회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랙은 ‘소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다양한 직업군과 대화하며 그들을 관찰하고 조사했는데요. 



자신을 소진할 정도로 너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그들에게선 다음 세 가지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 첫째, 공감 능력을 잃고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상실했다.

▪ 둘째, 일에 대한 의미를 잃었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다.

▪ 셋째, 오래 일하면 일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졌다.


 

만성적인 소진 상태에 이른 사람들은 생각하는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졌으며, 충동 조절이 어렵고 불안과 우울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뇌의 부피가 줄어들며 나타난 현상이었죠. 이 모든 건 인간의 주의력과 의지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넘어서면 소진되고 그렇게 조금씩 망가져 가는 것이죠. 당연히 일의 능률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한 시간이면 할 수 있었던 일을 두 시간 걸려 해냅니다. 이는 초과근무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능률은 떨어지고, 또 초과근무를 하고 능률은 더 떨어지고,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그렇다면 일의 생산성과 노동시간 사이엔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포드 모터 컴퍼니의 창설자인 ‘헨리 포드'는 일의 능률을 살피기 위해 노동시간을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했습니다. 그러자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Henry Ford(July 30. 1863 - April 7. 1947)


그 후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40시간 근무는 표준 노동시간이 되었죠. 이 사실은 연구 결과로도 뒷받침되었습니다. 

 

경제학자 존 펜카벨의 연구에 의하면, 업무 시간이 40시간을 넘어가면서부터 효율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50시간을 넘어서면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주당 70시간 일하는 것과 56시간을 일할 때의 생산성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노동 시간과 생산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죠. 



정보 과부하의 시대


글의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데이터는 매일 250경 바이트씩 추가되고 있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데이터가 증가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으며, 미래에 우리가 맞이할 데이터의 양은 지금보다 수십 배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정보 중독자들이 늘고 있는데요.

 

미국 심리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95%는 업데이트되는 뉴스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그 중 56%는 새로운 정보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받아들인 뇌는 로드가 걸리고 에너지가 산발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필요한 때에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 어려워집니다. 그 상태에서는 차분한 사색 역시 불가능하므로 제대로 된 판단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정보 과부하는 집중력, 인지 능력, 의사 결정 능력 저하를 불러오게 되죠.


정밀할수록 더 심각하게 타격을 받는다..


정보 과부하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내기 위해 요긴한 무기는 바로 ‘선택과 집중'입니다. 누구도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고, 이 많은 정보를 소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택지를 줄이고 ‘양보다 질’로써 정보를 선별해 컨트롤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인간 고유의 능력인 사유하는 힘을 잃고 피상적인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의 문제점을 타개할 해결책


해야 하는 일을 미루고 늑장을 부리거나 우울증을 앓아 움직일 힘이 없는 것은 그 사람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신체에서 보내는 불안, 혼란, 지쳤다는 일종의 경고 신호입니다. 배가 고프면 꼬르륵 소리가 나고,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잠이 쏟아지는 것처럼 몸은 필요한 걸 얻기 위해 우리에게 지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업무 시간에 하는 딴짓도 직원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뇌에 쉴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는데요. 에티오피아의 행정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2017년 연구는, 잠깐의 딴짓이 직원들을 리프레시 시켜주어 집중을 더 잘하게 만들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또한, 딴짓하는 직원들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독특한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창의성 및 사색에 이 ‘딴짓'이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죠.



‘시간 낭비’는 건강에 이롭고 정상적인 행위입니다. 우리 몸이 보내는 ‘게으름'이라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 창의력, 통찰력, 문제해결 능력을 얻을 수 있는데요. ‘게으름' 신호를 포착한 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정보의 양을 제한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비하라. 

[정보의 양을 제한하는 3가지 방법]

정보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화하려면, 우선 받아들이는 양을 제한해야 합니다.

    (1) 필터 기능을 통해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단어, 문구, 사용자를 뮤트 혹은 언팔로우합니다. 필요하다면 친구 혹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언팔 혹은 계정을 차단합니다.

    (2) 수많은 뉴스를 모두 흡수하는 대신, 헤드라인만 훑고 넘어간 뒤 관심 있는 한두 가지 주제의 기사만 심층적으로 읽습니다.

    (3) 분노, 혐오로 가득 찬 댓글 창은 스트레스 지수를 높일 뿐이니 댓글 창사용을 자제합니다.

[정보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방법 3가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을 제한했으면, 그 정보를 정교화해야 합니다.

    (1) 많은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는 대신, 천천히 단락을 나눠 읽는 등 적극적 읽기 연습합니다. 여기엔 여섯 가지 연습 방법이 있는데요. 시각화, 명료화, 문제 제기, 예측, 연결, 평가입니다.

    (2) 온라인 댓글 창 대신 직접 사람을 만나 대화하거나, 충분한 사색 후 노트나 개인 계정에 에세이를 써봅니다.

    (3)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마음을 편히 가집니다.

 

두 번째, 일을 덜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과도한 업무 시간을 방지하는 3가지 방법]

    (1) 디지털로 업무 처리하는 시간을 줄여, 일-집 간섭 고리를 끊어 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계 없는 삶에 끊임없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 업무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반복적 과업 대신 의미 있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일한 시간보다 일의 질을 더 중요시합니다.

    (3)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체적으로 일하며, 자율성을 주장합니다.

 

세 번째, 기록을 덜 남겨라.

[디지털 도구를 통한 삶의 기록을 덜 남기는 3가지 방법]

다음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디지털 도구를 통한 삶의 기록을 줄여 봅니다.

    (1) 스마트폰 멀리하기

    (2) 알람과 활동 트랙커 꺼놓기

    (3) 결과(기록)보다 과정(행위) 중시하기

 

네 번째, 삶의 가치를 재설정하라.

    (1) 음미하는 법을 배웁니다.

    긍정심리학자 ‘프레드 브라이언트’는 기쁨과 의미를 찾는 일은 모두 ‘음미'로 귀결된다고 말했는데요. 

    음미는 기쁨을 표현하고,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며, 좋은 일을 축하하고, 행복한 경험을 되새기는 방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2) 시간을 내어 경외감에 집중해봅니다.

    경험 자체에 감각을 집중할 때 경외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물을 관찰하고, 처음 가본 골목길을 걷고, 오로지 탐색을 위해 새로운 곳에 가서 자연의 풍광에 감탄했을 때 경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색을 더하면 금상첨화겠죠.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면,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


효율성, 가성비, 실용성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과할 정도로 ‘쓸모'를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반대로 정처 없이 걷는 오솔길, 읽는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 우주에 관한 사색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 쓸모없는 일로 치부해왔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쓸모없음'은, 우리가 스스로 보내는 신호를 포착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함으로써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쓸모없음의 가치, 쓸모없음의 쓸모죠. 이를 깨닫고, 게으름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통념을 모조리 걷어내면 무엇이 중요한지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정보의 양보다는 질을, 경험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사회적 시선보다는 내면의 소리를 중시하며 순간을 음미와 경외로 가득 채운다면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책의 끝에서 저자는 말합니다. “지금 그대로의 당신으로도 괜찮다.”라고요.

써먹을 포인트


  • 많은 현대인이 이미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하다 결국 번아웃을 경험하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번아웃 상태에선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요. 번아웃의 다른 말인 무기력, 게으름 역시 몸과 마음을 원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현상입니다. '게으름'은 나약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게으름'을 퇴치해야 할 개인의 악(惡)으로 치부하는 '거짓 교리'를 기억하세요.

    1. 당신의 가치가 곧 당신의 생산성이다.

    2.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신뢰할 수 없다.

    3. 항상 더 해낼 수 있는 여력이 있다.

  • 17세기의 제국주의(노예 노동)와 18세기의 산업혁명(자본주의)이 거짓 교리의 기원입니다. '현재의 고통은 사후세계의 번영'을 약속한다며 근면, 성실하게 일을 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교화했습니다.  
  • 사회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랙'은 '소진'(번아웃)된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세 가지의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1. 공감 능력을 잃고 정체성과 목적 의식의 상실했다.

    2. 일에 대한 의미를 잃었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다.

    3. 오래 일하면 일할 수록 생산성이 떨어졌다.

  • 경제학자 '존 펜카벨'의 연구에 의하면, 업무 시간이 40시간을 넘어가면서부터 효율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50시간을 넘어서면 생산성이 급격

    히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주당 70시간 일하는 것과 56시간을 일할 때의 생산성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노동 시간과 생산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죠.

  • 에티오피아의 행정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2017년 연구는, 잠깐의 딴짓이 직원들을 리프레시 시켜주어 집중을 더 잘하게 만들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또한 딴짓하는 직원들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독특한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창의성 및 사색에 이 '딴짓'이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 우리가 '게으름' 신호를 포착한 뒤 취해야 할 행동 네 가지

    1. 정보의 양을 제한하고, 의미있는 방식으로 소비하라

    2. 일을 덜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3. 기록을 덜 남겨라

    4. 삶의 가치를 재설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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